호텔 같은 강의실 미국 라스베이거스대 호텔경영학과 강의실은 호텔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처럼 꾸며놨다. 칵테일바에서부터 주방, 카지노장까지 강의실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이 강의실인지, 라스베이거스 호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현장과 똑같다.

미국 필라델피아주 드렉셀(Drexel)대 생명의학공학과 4학년 미히르 파텔(22)은 지난 학기 일주일에 40시간을 제약업체 머크(Merck)에서 일했다.

C형 간염 백신개발팀에 속한 파텔은 정직원과 맞먹는 시간당 22달러 급여를 받으며 연구에 참여했다. 신분은 학생이지만 머크 연구원과 다름없는 대우다.

여기서 일하면서 학교 울타리 내에선 몰랐던 사실도 깨달았다. 이공계라는 이유로 등한시했던 경영학 지식이 연구소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는 이번 학기에 금융 등 비즈니스 강좌를 집중적으로 신청해 강의를 듣고 있다.

이 학과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6개월씩 총 3차례 코업(Co-opㆍ일종의 인턴)을 해야 한다. 졸업 전에 무려 1년6개월간 현장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의무사항이다.

학생 스스로 특화됐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졸업은 꿈도 못 꾼다.

파텔과 그 친구들에게 기업 현장은 교과서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배움터다.

사사키 이치오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 축산대 교수와 학교 취업추진위원회 소속 교수들은 지난해 100여 개 기업을 직접 방문했다.

삿포로에서 도쿄까지 일본 열도를 훑고 다니며 만난 기업인의 충고는 이듬해 교과 과정에 반영됐다.

앤디 파인스타인 라스베이거스대(UNLV) 호텔경영학과 부학장은 본인 휴대폰 번호를 칠판에 큼지막하게 쓰는 것으로 첫 강의를 시작한다. "밤이든 낮이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저없이 전화하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한다. 강의를 듣는 힐러리 브루스는 "저녁 식사 도중 식당 와인리스트에 모르는 게 있으면 곧장 교수님께 전화한다. 그는 어떤 교과서도 따라올 수 없는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며 존경심을 표한다.

세계 대학교육 패러다임이 지금 급변하고 있다. 도서관에 갇힌 학생은 도태되고, 현장과 괴리된 교수는 설 자리가 없다.

라스베이거스대 학생들은 "거대한 호텔들이 몰려 있는 스트립(거리 이름)은 제2 캠퍼스"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드렉셀대 학부생은 아예 기업연구소로 등교한다. 학점도 기업에서 받는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연구소에는 학생보다 기업인이 더 많다. 캠퍼스가 기업이고, 기업이 캠퍼스다.

붕어빵 같은 획일적 커리큘럼, 공무원보다 더한 철밥통을 껴안고 사는 교수들, 그 속에서 박제화한 교육을 받으며 취업걱정만 하는 한국 대학생들과는 너무도 극명하게 비교된다.

지방국립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박인수 씨(24ㆍ가명)는 "인턴이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찾아다니지 않으면 현장 경험이 전혀 없이 졸업하는 학생도 많다"고 말한다. 보통 학부 3학년 때부터 교수 실험실에 속하긴 하지만 기업과 연계된 실험실이 아니면 기업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세계 명문을 겨냥하는 선진국 지방대학과 비교해볼 때 국내 지방대학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눈높이가 형편없이 낮고 스스로 특화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가령 지방대학들이 혁신역량을 강화하겠다며 내놓은 청사진을 보면 거의 모든 대학이 ITㆍBT 같은 인기 분야에 특화하겠다며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을 벌인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 교육체제를 가진 중국만 해도 석학급 교수 1000명을 유치해 100개 대학을 세계적 특성화 대학으로 키우는 이른바 111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칭다오 중국해양대학 둥샹린 부총장은 "해양ㆍ수산 분야에서 2020년까지 세계 5대 대학에 입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대학 특성화를 위해 해양법학과, 해양경제학과 등 인문계 학과들까지 차별화를 강화하고 있다.

북유럽 핀란드 작은 도시 탐페레 대학 얄 투르 에릭손 총장의 성공전략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의 특성화 전략은 `작은 것에 눈을 돌리자`였다. 작은 정보기기 하나가 미래에 전 세계에서 창출하는 엄청난 부가가치에 주목했다. 그리곤 핵심기술로 `정보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했다. 탐페레는 작은 도시지만 우리 공대는 핀란드 2위에 올랐다. 이제 우린 세계적인 대학이다."



[특별취재팀 = 황형규(팀장) / (미국 라스베이거스)박준모 기자 / (독일 슈투트가르트)이소아 기자 / (일본 홋카이도)김대원 기자 / (핀란드 탐페레)박소운 기자]